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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공동경비구역 JSA, 이념과 우정 사이 남북의 운명은?

by IRON90 2023.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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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때는 한국전쟁이 끝나고 시간이 흐른 어느 날,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 수색을 하는 남한 군인인 이수혁 병장은 수색 도중에 지뢰를 밟아 대열에서 낙오된 이수혁 병장은 북한군 중사 이경필과 전사 정우진의 도움으로 다행히 목숨을 건진다. 이를 계기로 그들은 친해졌고 이수혁 병장은 군사분계선을 넘어 그들을 만나러 간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이 만나는 장면을 북한군에게 들키고 친형제처럼 친하게 지내던 그들은 서로 총부리를 겨눈다. 한순간에 유대를 쌓아가는 친우에서 적으로 돌아서는 순간이 되었다. 서로 웃으며 장난치고 서로의 이야기를 했던, 그 순간만큼은 동지이자 전우이고 친구였던 이들에게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그리고 잠시 후 정적이 흐르고 식은땀이 흐르는 순간에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 북한 초소에서 총성이 울린다. 총성이 정 막을 가른 후 맞닥뜨리게  현실은 북한 초소병 정우진이 죽고, 그 옆에 중년의 북한 중사 오경 필동 총에 맞아 쓰러져 있다. 휴전 중인 남북 군사분계선 가운데서 일어난 총기 살인사건의 용의자인 이수혁 병장이 총상을 입은 채 발견된다. 중립국 감독 위원회에서는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중립국 감독 위원회 소속의 한국계 스위스인 소피 장 소령이 파견된다. 그녀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그들을 만나 당시의 상황과 여러 가지 상황을 조합하여 사건의 전말을 파헤치려 한다.

2. 역사적 배경

 - 공동경비구역 안에는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장을 비롯하여 북한 측의 '판문각', 유엔 측의 ‘자유의 집' 등 10여 채의 건물이 들어서 있다. 1971년 8월 남북적십자 예비회담, 1972년 7월 7.4 남북 공동 성명 등으로 판문점은 당시 5천만 한민족의 가슴을 한때 뜨겁게 한 바가 있고, 1973년 6월 남북조절위원회가 결렬된 지 7년 만인 1980년 8월부터는 남북총리회담의 실무회담이 이곳에서 열려 8차까지 거듭한 끝에 북한 측의 일방적인 불참으로 공전된 일도 내외의 관심을 모았다. 그리고 2015년 8월 서부전선 포격 사건의 연장선으로 이루어진 남북고위급접촉으로 다시 한 번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주로 한국전쟁 교전당사 사이에 맺어진 정전 상태를 관리하기 위한 군사정전위원회의 회의와 협상의 장소로 이용되었지만, 1971년 9월 20일에 열리게 된 남북적십자예비회담을 계기로 남북한간 접촉과 회담을 위한 장소 및 남북한을 왕래하는 통과 지점으로 활용되었다. 원래는 정전협정에 따라 중국인민지원군 대표단도 주둔했으나, 1958년 중국 인민지원군 철수가 완료되었다. 그러나 중국 대표단 자체는 잔류하였으나, 1991년 3월 25일, 처음으로 한국군 장성 황원탁 소장이 유엔사 수석대표로 임명된 것에 대해 북측이 한국은 정전협정의 당사자가 아니니 인정할 수 없다고 정전위 보이콧을 선언하게 됨에 따라 중국의 입장이 애매해졌다. 급기야 북한은 1994년 4월 28일, 군정위 탈퇴를 선언하고 중감위의 폴란드 인원도 추방시키는 한편 조선인민군 대표부를 설치했다. 마지막 중국대표였던 노광업 대교는 1994년에 북경으로 철수했으며 정전위 보이콧에 동참해달라는 북한 측의 끈질긴 요청에 중국은 1994년 9월 1일, 외교부를 통해 공식적으로 대표단 철수를 선언함으로 개성에 잔류했던 5명의 참모들까지 12월 15일에 평양에서 출발하는 열차를 태워서 철수시켰다. 다만 중국은 정전협정의 유효성을 확인하면서 철수가 아닌 소환이란 표현을 사용, 복귀의 여지를 남기는 듯 했는데 30년 가까이 지난 2023년까지 복귀 얘기는 감감무소식이다.

3. 총평

- 한국전쟁이 끝나고 시간이 지나 남과 북은 각각의 국가로 나누어지게 되었고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로 이념이 나누어지면서 수많은 이산가족이 생기고 사망자와 전쟁의 아픔을 겪는 많은 이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남과 북은 중립국들의 중재와 이익에 따라서 한반도를 나누게 되었고 38선이 생기되었으며 가운데 판문점을 만들게 되었다. 이때의 휴전은 아직도 진행 중이며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가 되어있었다. 이 영화는 남과 북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서로 같은 민족이고 친구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이 이루어졌다고 하여도 국어의 이념과 사상, 가치관과 주체성 등 이러한 것들이 우리의 사의 있어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걸 보여주는 듯하다. 초코파이를 같이 먹는 장면, 군사분계선을 넘어 왕래를 하는 모습 등 이러한 모습들은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어려운 부분이지만 우리가 한 번쯤은 이루어 보고 싶은 마음을 담아 각색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또한 중립국이라는 부분은 우리의 뜻보다는 당시의 세계열강들을 표현 한듯하고 이러한 열강들의 뜻이 반영되어 상황을 만들어 가는 것을 표현한듯하다. 이런 부분은 전쟁으로 힘든 상황이었던 남과 북, 다른 이념, 열강의 개입 등으로 우리가 겪고 있는 아픔과 슬픔에 대하여 다시 한번쯤 각인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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