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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한산- 용의출현, 운명을 바꿀 압도적이고 기적 같은 승리

by IRON90 2023.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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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1592년 4월, 섬나라 일본은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하고 섬나라인 한계를 넘어서 대륙으로 진출하려 한다. 섬나라인 일본은 조선을 점령 후 명나라까지 진격하여 대륙으로의 진출로를 확보하고 대국으로 성장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으며 초기 목표로 조선을 힘으로 점령하고 굴복 시 켜려 한다. 당시 조선의 상황은 좋지 않은 상황이었으며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이런 암담한 상황에서 일본은 조선을 목표점으로 잡고 전쟁을 일으킨다. 바로 임진왜란이 일어난 것이다. 이제 조선은 왜적의 침입을 막으려 했지만 모든 부분에서 안정적이지 못한 조선은 임진왜란 발발 후 단 15일 만에 왜군에 한양을 빼앗기며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다. 이에 조선을 단숨에 점령한 왜군은 명나라로 향하는 야망을 꿈꾸며 대규모 병역을 부산포로 집결시킨다. 한편, 조선의 이순신 장군은 조선의 연이은 전쟁의 패배와 임금인 선조마저 의주로 파 천하며 수세에 몰린 상황에서도 수군을 하나로 모아 훈련을 하며 전쟁에 대비하고 있었다. 거북선을 필두로 새로운 전술을 고민하며 왜적을 물리칠 준비를 한다. 하지만 앞선 전투에서 손상을 입은 거북선의 출정이 어려워지고, 거북선의 도면마저 왜군의 첩보에 의해 도난당하게 되면서 상황은 더욱더 악화된다. 그에 반해 왜군은 연승에 힘입어 그 우세로 한산도 앞바다로 향하고, 이순신 장군은 조선의 운명을 가를 전투를 위해 필사의 전략을 준비한다. 1592년 여름, 음력 7월 8일 한산도 앞바다, 압도적인 승리가 필요한 조선의 운명을 건 지상 최고의 해전이 펼쳐진다.

2. 역사적 배경

 - 견내량대첩(見乃梁大捷)으로도 알려진 임진왜란 중 벌어졌던 이순신의 승전 중 하나로 행주대첩, 진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흔히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강감찬의 귀주 대첩과 함께 한국사 3대 대첩이라 불린다. 임진왜란의 전황이 바뀌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전투중 하나로 일본 수군의 수륙병진을 완전히 박살낸 대첩이며, 이 한산 해전에서 승리하면서 평양까지 승승장구한 고니시 유키나가의 군이 추가 보급 및 병력 지원을 받지 못하여 평양성에 눌러앉게 되었다. 수군의 도움을 받지 못하니 전라도를 공격하는 왜군의 움직임도 둔화될 수 밖에 없었다. 명칭은 한산도 대첩으로 굳어졌지만 당시에는 한산 해전이 아니라 견내량 싸움 또는 거제 싸움으로 불렸다. 한산도를 기점으로 싸운게 아닌, 견내량에 정박중인 왜군을 꾀어다가 한산 앞바다에서 수몰시킨 전투의 개요를 생각하면 한산도 대첩이라는 말보다는 견내량 해전이라고 보는게 더 옳은 표현이긴 하다. 다른 해전들에 비해 군사학적으로 가치가 높은 전투다. 해상에서의 포위섬멸전을 이 정도로 정교하게 선보인 전투는 세계사적으로도 드물기 때문이다. 선조 25년(1592), 5월과 6월 사이 2차 출동을 통해 전라 좌수사 이순신의 함대를 주축으로 한 조선 수군은 사천, 당포, 당항포, 율포로 이어지는 일본 함대를 상대로 일방적인 토벌전에서 승리하게 된다.이에 해안에서 일본군이 조선 수군에 의해 동쪽으로 밀려버리는 것을 염려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6월 23일자 명령을 통해 용인에서 주둔한 와키자카 야스하루를 다시 해안으로 급파하고, 오다 노부나가 시절부터 수군의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구키 요시타카와 그 외 가토 요시아키 등 3인을 소집하여 군대를 규합하여 조선 수군을 토벌하도록 명령했다.이에 조선 수군은 8월 12일 전라 우수사 이억기와 더불어 경상 우수사 원균의 함대 등 총 55척이 노량에서 합세했다. 참고로 임진왜란 발발 초기에 원균이 자침시킨 경상우수영 판옥선만 해도 편제기준 70여 척, 기록상 56척 이상이다.

3. 총평

- 한산도 대첩은 우리나라 역사에 있어서 아주 유명하기도 하며 조선의 생사 여부에 아주 지대한 영향을 준 대첩이다.
이번 영화에서는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대 첨 중 하나인 한산도 대첩을 표현했다. 한산도 대첩은 몇 배나 되는 왜군 수군을 상대로 승리한 대첩이면서 학익진이라는 새로운 전술을 활용하여 승리하였다는 걸로 더욱 유명하다. 영화에서 표현되는 조선의 당시 상황이나 수군의 심경 변화, 이순신 장군의 심경 등 묘사 및 표현을 잘했다고 생각한다. 본인조차도 감정이입이 되어서 봤을 때 내가 과연 이순신 장군이었다면 그 상황에 그러한 방은 과 결심, 결정 및 실행을 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리도 명량에 이어 전투신을 본다면 엄청난 스케일을 느낄 수 있다. 거북선이 홀로 적진으로 들어가 화포를 쏘는 장면은 엄청나게 인상적이며 왜적이 불쌍하리만큼 보였다. 이러한 신을 은 시청자로 하여금 감동 와 웅장함 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당시의 전쟁 상황을 잘 표현했으며 왜군의 스케일 또한 웅장함에 감탄이 나올 정도이다. 그런 왜군을 상대로 승리했다는 자랑스러움과 기쁨이 밀려오기도 한다. 한산도 대첩은 역사적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우리 민족의 강인함과 숭고함, 용맹함 등 자랑스러움과 아픔이 있는 역사이기도 하지만 잊어서는 안 될 부분이 이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 역사에 조금 더 관심을 갖는 계기다 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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