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줄거리
- 아들인 사도세자가 성군이 되기를 바랐던 사도세자의 아버지 영조. 극중 영조는 사도세자가 어린 시절 때부터 엄하게 교육을 시킨다. 그 이유는 영조는 권력 투쟁 와중 숱한 죽음의 고비를 넘긴고, 신하들에게 권력이 넘어가지 않게 왕권을 강화하려 공부와 행동거지를 중요시하였으며, 영조가 즉위할 때 조정 대신들의 일부 폐단을 넘어가 주는 조건으로 협의를 하여 즉위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사정을 모르던 세자가 이러한 폐단들을 바꾸려 들자 영조는 신하들의 눈치를 보면서 세자에게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 툭하면 반역 모의 상소가 올라오며 역모죄로 잡힌 죄인들은 대놓고 영조에게 경종을 독살한 범인이라고 우기는가 하면 천한 무수리 최 씨의 자식이 어떻게 왕이 되냐며 비난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영조는 왕권과 후계를 안정시키려 더욱더 세자를 혹독하게 가르친다.
세제 시절의 혹독한 고생을 견딘 아버지 영조 입장에서는, 항상 자식은 모자란 듯 보인다. 세자가 어린 시절 영조가 직접 쓴 책을 읊으면서 무려 한 구절이나 빼먹자, "놀이는 한때의 맛이요. 학문은 평생의 맛이라고 내가 몇 번을 말했느냐! " "저, 저... 눈 껌뻑껌뻑 쳐다보는..."이라 말하고 노는 것만 좋아한다며 강하게 훈계를 할 정도다. 세자가 어느덧 청년이 되자, 틈만 나면 "양위하겠다."라는 등의 얘기를 꺼낸다. 이는 진짜 마음이 있는 게 아니라 세자의 반응과 신하들의 충성심을 떠보기 위한 테스트였다.
그러다 대리청정이 시작되었는데, 세자의 개혁적인 성향이 자신과 안 맞았고, 거기에 자신이 이뤄놓은 탕평책을 건드리는 게 싫었는지 신하들이 다 보는 앞에서 세자의 발언 하나하나에 지적을 해서 기를 죽인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세자와 아버지인 영조 사이의 갈등은 더욱더 골이 깊어지고 세자는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이상행동과 불안 증세, 환각, 환청 등 많은 어려움이 생겼으며 이로 인하여 생기는 불미스러운 일들이 많아지며 두 사람 사이 악연이 이어진다.
2. 역사적 배경
- 아버지 영조의 사도세자를 향한 아동학대는 의외로 대단히 어릴 적부터 시작되었다. 3살 때까지는 세자를 매우매우 아끼며 하는 일마다 칭찬했지만, 겨우 4살 때부터 구박하고 혼내기 시작한 것이다. 기대가 너무 컸던 나머지 엄격하게만 키우다 보니, 세자는 이미 9살 때부터 부왕(영조)을 만나기를 두려워했다. 심지어 날씨가 흐린 것을 두고도 영조는 "세자가 덕이 없어서 그렇다"며 꾸짖었기에, 세자는 궁인에게 "오늘은 날씨가 어떤가?"라고 물으며 걱정해야 했다. 특히 10살 이후부터 영조는 세자한테 더욱더 혹독해지기 시작해 칭찬의 수가 급격히 줄었고, 엄한 질책이 많아졌다.
혜경궁 홍씨의 저서 한중록에 따르면, 4~5살까지만 해도 영조가 사도세자와 함께 자기 위해 저승전에 자주 머물렀으나, 경종을 모시던 취선당의 내인들이 영조와 영빈 이씨에게 무례하게 굴어 불쾌해 가지 않았다고 한다. 세자가 7살이 되던 해에 유모인 한 상궁을 드디어 쫓아냈다고 하는데, 세자의 입장에서는 하루 아침에 갑자기 주 양육자가 바뀌었으니 이것도 아동학대. "궁녀가 보기 싫으면 거기 있는 궁녀들을 쫓아내고 당신께서 가르치시지, 왜 사도세자를 경종의 내인들과 지내게 하고 미워하셨는가"라는 혜경궁의 원망은 덤.
영조의 정서적 학대가 얼마나 심했는가 하면, 정성왕후 서씨가 병환이 깊어지자 병수발을 직접 들러온 세자가 정성왕후가 피를 토한 그릇을 붙들고 통곡하던 와중에도 영조가 온 것을 보자마자 울음이 뚝 그치고 겁에 질려 방 한구석에 웅크려 벌벌 떨었을 정도다. 지속적으로 아동학대에 노출되어 아버지를 두려워한 사도세자는 아는 것도 우물쭈물해서 잘 대답하지 못했다. 이에 영조는 세자에게 더 실망해 매우 거친 질책과 비난만 자주 했다. 아버지를 두려워한 세자는 대답을 우물쭈물 잘 못하고, 그런 모습을 아버지는 정녕 이해하거나 따뜻하게 대해주지 않고 갈구기만 하니 악순환이 계속된 것이다. 사도세자는 10대 초중반에 이미 심각한 우울증을 앓았는데, 우울증 증상 중에 이해력과 기억력 감퇴도 있다. 이런 엄격한 막장 훈육까지 학문과 서연에 대한 흥미, 관심, 의욕을 크게 저하시켰을 것이다.
3. 총평
- 사도 제사의 일대기와 조선시대 왕실의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조선시대 왕실의 왕이 되기 위한 교육은 매우 엄격하였으며 체계적이었습니다. 하나 영조와 그의 아들인 사도세자는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향했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로 볼 수 있는 것은 영조의 즉위에 관한 이유를 들 수 있으며 무수리의 아들, 또한 왕권의 정당성, 왕권 강화를 위하여 버티고 이겨낸 세월과 경험이 자식을 키우는 잣대가 되어 더욱더 엄격하고 숨통을 조일 정도로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는 기존의 체계를 무시하며 아들인 사도세자에게 많은 부담과 공포를 주었을 부분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영향으로 사도세자는 어릴 때부터 정서적으로 불안하였으며 이는 영조에게 만족의 기준을 채우지 못하게 되며 부자지간의 갈등은 깊어져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생겼습니다. 이는 역사적으로 안타까운 사건이 된 기록으로 볼 수 있으며 또한 현재 우리에게 교훈을 주는 기록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며 자식을 위한 교육과 인성, 정서 등 부모의 기준으로만 적용하여 볼 것이 아닌 한 사람으로 보며 자식을 위한 올바른 길과 정서적 안정을 위한 공감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부모 자식 간 유대감과 정서적 교감이 얼마나 중요하고 존중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걸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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